전국일주 5일차 2005년 9월 2일

6시에 일어나자마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다 챙기고 해장하라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매운탕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좀 더 쉬다가 출발하고 싶었지만 오늘 오후4시에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울릉도행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버님은 일찍 나가셔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어머님께만 인사드리고 집을 나섰다. 속초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속초시내를 지나는데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시내를 막 벗어날 쯤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꺼내 입고 달렸다. 안경에 빗방울이 맺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빗속에서도 자동차들은 쌩쌩 달리며 우리를 위협한다. 배수가 잘 안된 도로에서는 지나는 차의 물세례를 감수해야 했다. 빗줄기가 어찌나 굵은지 떨어지는 빗줄기는 아프게 온몸을 두드린다. 묵호까지는 120km쯤 된다고 했다. 열심히 달리면 뱃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천둥번개도 장난이 아니었다. 바로 머리위에서 번쩍이며 엄청난 크기의 천둥으로 세상을 울렸다. 이러다가 잘 못해서 벼락을 맞는게 아닌가 달리는 내내 무서웠다. 워낙 지은 죄가 많아 벼락이 무섭다. 낙산사에 들리자고 했었으나 이 빗줄기를 뚫고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그냥 지나쳐 달렸다. 비 때문에 속초에서 양양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진원이형은 2년 전엔가 울릉도에 간적이 있다고 했다. 배편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있다고 했는데, 오후 4시쯤으로만 기억나고 정확하지는 않다고 했다. 양양을 조금 지나 빗줄기가 잦아졌다.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들어가 묵호여객선터미널로 전화를 했더니 비수기에는 울릉도행 여객선이 하루에 한번만 운행한다고 했다. 운행시간은 오전 10시... 
빗줄기도 잦아들고, 당초 계획을 바꿔 오늘은 묵호 가까운 곳에서 잠을 자고, 울릉도는 내일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지나쳐왔던 낙산사로 다시 들어갔다.



낙산사는 불탄 이후로 입장료가 없어졌다. 낙산사에 도착 했을 때는 비는 완전히 그쳤고, 햇볕이 나기까지 했다. 낙산사 입구에 자전거를 메어놓고 노트북과 카메라 등 고가의 장비가 든 핸들바 가방만 들고 낙산사 경내를 구경했다. 천천히 낙산사를 한바퀴 돌고 사진도 찍고 몸도 녹일 겸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낙산사는 자판기 커피가 무료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세잔을 마셨다. 여기저기 폐허처럼 불타버린 낙산사는 다시 불심으로 예전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며 여기저기 화재 당시의 사진들을 큰 판넬로 제작해 모금함과 함께 비치해 뒀다. 문득 불심이 약해 불타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건 내가 갖는 종교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낙산사에 대해 무지한 나는 지나는 스님을 붙잡고 낙산사라는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서 관음굴에서 수행을 했고, 그 관음굴이 있던 자리위에 홍련암이라는 법당을 지으면서 이후 낙산사라는 큰 절이 되었단다. 정작 낙산사라는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단다. 단지 떨어질 ‘낙’자로 보아 이곳에서 바다의 일출도 보고 뒷산으로 지는 일몰도 볼 수 있어 그런 데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싶단다. 기념 촬영 몇 번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새로 건설한 7번 국도보다는 구 해안도로를 타고 달렸다. 아름다운 해변이 바로 옆에 펼쳐지고 있었다(물론, 이곳 해변에도 잔인한 철책이 늘어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주문진으로 향하던 중 해안도로가 끝나고 다시 7번 국도와 만난다. 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도로가에서 머루원액과 옥수수, 감자떡을 파는 조그만 좌판에서 일단 굵은 빗줄기를 피하다가 좌판아줌마를 설득해서 2,000원에 파는 감자떡을 1,000원에 사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새벽에 아줌마가 직접 만들어 내다 파는 그 감자떡은 어디에서나 쉽게 맛보는 그런 감자떡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생에 최고로 맛있는 감자떡을 먹었다. 솔직히 큰 마트나 백화점에서 감자떡을 사 먹어봤었지만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약간의 시장기가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강원도 본토 솜씨라 이렇게 맛있는 것 같다.



주문진해수욕장에 잠깐 들러 구경하고, 주문진항 먹자거리에서 파는 조개구이와 오징어 구이에 대한 유혹을 애써 뿌리치면서 천천히 페달을 굴렸다. 참 우수운건 이곳의 건어물 가게 간판마다 전국 각지의 이름을 내걸었으니 그들의 상술은 참으로 단조롭다. 같은 조끼를 맞춰 입고 주문진을 찾은 단체 관광객들은 역시나 그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의 번호판에 적힌 지명을 간판에 내건 가게 앞에 줄줄이 서서 건어물 사기에 바쁘다. 아무래도 간판에 ‘진짜 진짜 충청도 ○○’, ‘진짜 진짜 전라도도 ○○’하는 식의 간판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그 지역에서 이곳으로 많이들 오나 싶다. 



경포대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는 한 학생을 만났다. 사진촬영을 부탁하고 같은 자전거 여행자인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이곳에서 잠깐 쉬어 가라고 했는데 지금 역에 가서 서울 올라가야 한다며 그냥 가버린다. 축 처진 어깨로 터벅터벅 걷는 그 뒷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내 맘도 안 좋다. 그 모습을 한참보다 보니 아차 싶었다. 진원이형한테 잠깐 다녀오겠다고 한고 바로 자전거를 타고 뒤쫓았다. 
“저기 아저씨~ ”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 더 큰 소리로 부르니 이어폰을 뽑으며 뒤돌아본다. 
“네? 무슨일로...”
“혹시 펑크난건가요?”
“네? 아, 아닌데요...”
타이어를 보니 앞뒤다 말짱하다.
“그럼 다른 곳이 고장인가요?”
“아뇨 자전거는 말짱한데요. 그런데 왜... ?”
“자전거를 끌고 가시길래 혹시나 펑크가 났나 하구요. 펑크나 간단한 고장은 제가 고칠 수 있거든요.”
“아... 전 그냥 걷고 싶어서요...”
그걸 계기로 길가에 서서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경포대까지 오고 싶어서 무작정 여행을 떠나 경포대에 좀 전에 왔다가 지금 다시 기차로 서울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미시령을 넘어서 왔는데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냥 끌고 왔어요 한다. 뭔가 많은 사연을 간직한 것 같은 그 학생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람에게 그 속내를 쉽게 풀어놓지 않는다. 그 학생의 말투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는 뭔가를 잊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학생의 이번 여행이 뭔가를 잊기 위한 여행보다는 많은 것을 얻어가는 여행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강릉시내로 들어갔다. 늦은 점심을 간단히 햄버거로 떼우고, 그간 정리했던 사진과 글들을 홈페이지에도 올려야 한다. 김부장님한테 쓰이는지 어쩐지 알수는 없으나 사진도 보내야 하고, 어제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아줌마에게 사진도 보내줘야 하고... 그런데 또 무선 인터넷이 말썽이다. 무선 인터넷 신호는 잘 잡히는데 네스팟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무선랜 설정을 바꾸고 어쩌고 하다보니 네스팟이 잘 된다. 어쨌거나 30분 예상했던 시간을 이것저것 헤매고 어쩌고 하다보니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정동진에 또 심한 오르막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 정동진은 지나야 내일 오전 여유 있게 묵호에 도착할 텐데... 시간은 4시가 넘었고, 빗줄기는 여전하고, 먹장구름 때문에 날은 어둡다. 



내리는 빗줄기 속이라 피곤이 더 빨리 오는지 강릉에서 정동진까지 가는 것도 힘에 부쳐온다. 이렇게 저렇게 정동진에 다 와가는데 강릉통일공원 함정전시관이 보인다. 일단 공원으로 들어섰다. 매표소에서 자전거를 가로 막는다. 입장료를 내란다. 안에 들어가면 뭘 볼 수 있냐고 했더니 그냥 군함과 잠수정의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함정 내부에 안들어갈거 라며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솔직히 들어가 보고 싶지도 않다. 
좆 까세요들~ 공원 초입에 있는 안내도를 보다가 욕이 절로 나온다. ‘문화와 관광의 도시 강릉 - 강릉통일공원안내도’... 그 안내도에는 전체 공원 조감도와 공원의 주요 시설들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통일안보전시관], [육군전시장], [공군전시장], [함정전시관], [월남참전기념탑], [무공수훈자공적비], [잠수함침투희생자위령탑]... 도대체 뭐가 통일이란 말인가... 강릉통일공원 안내전문은 이렇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이며 반단도인 강원도. 강원도 해안 중심도시인 강릉 안인진과 정동진에는 깜짝 놀랄 민족대립의 현장이며 전쟁의 슬픔이 숨어 있는 곳이다. ....중략..... 6.25전쟁과 9.18 북한잠수함/무장공비 침투등의 아픔을 안고 있는곳에 평화통일을 염원하면서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고자 ....중략.... ] 하~ 이것들 지랄이네... 갑자기 짜증이 몰려온다. 기념촬영하자는 진원이형의 말에 진원형 사진만 찍어주고 바로 자전거에 올랐다. 
“넌 기념사진 안찍어? 여행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우리가 언제 이렇게 가까이서 군함을 보겠냐?”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오늘밤 텐트에서 자는 것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여관을 잡자니 돈이 만만치 않고, 동해안에 왔는데 이곳에서 신선한 회도 먹어보지 못했고, 대충 횟집에서 회한접시 먹으며 하룻밤 신세질 생각을 했다. 정동진에서 한 아저씨를 만나 묵호항 가기 전에 있는 회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추천 받았다. 아저씨는 주저 없이 금진으로 가라고 했다. 정동진역에서 사진만 몇 장 빨리 찍고는 길을 서둘렀다. 벌써 시간은 6시가 다 되어 간다. 정동진 고개를 넘어 어두운 빗길을 한참 가다가 금진항에 도착했다. 
횟집 문을 두드렸다. 빈방은 있지만 회를 먹는다고 재워 줄 수는 없단다. 서너 곳에서 같은 식으로 퇴짜를 당하고 그냥 텐트를 치고 잘까, 회를 포기하고 싼 민박을 할까 하다가 일단 자는 건 차후에 생각하고 회부터 맛있게 먹자하고 회 센터로 갔다. 그다지 크지도 않는 광어 한 마리에 7만원을 부른다. 누굴 호구로 아나... 옆집으로 갔다. 흥정 끝에 우럭 두 마리에 매운탕 밥공기까지 모두 해서 3만원에 합의 했다. 아줌마는 비에 흠뻑 젖은 두 자전거 여행객을 위해 이것저것 일명 스끼다시를 많이 내어다 주신다. 삶은 게가 두 마리 나왔다. 소주를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께 이게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조금있다가 개를 종류별로 네댓마리를 더 가져오고는 일일이 설명해준다. 소주에 회를 먹고, 매운탕에 밥을 먹고, 남은 매운탕에 소주를 더 마시니 벌써 다섯 병이다. 한참 이야기를 하며 술판을 벌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었다. 아주머니도 주방에서 그대로 주무신다. 아주머닐 깨울까 하다가 그냥 먹던 테이블 옆에서 자리를 펴고 누웠다. 어쨌거나 계획대로 오늘밤 잠자리를 이렇게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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