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일주 4일차 2005년 9월 1일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빗방울 한두개가 텐트 천정을 두드리고 있었다. 당장 나와 하늘을 봤다. 바람도 심상치 않고, 비가 곧 쏟아질 것 같다. 바로 형을 깨웠다. 짐을 비 피할만한 곳으로 옮기고, 빨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간 비바람을 뚫고 진부령을 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막상 출발하자니 황태로 유명한 이곳을 그냥 지나는 게 걸렸다. 그래 진부령 넘으려면 힘도 써야 하고, 황태해장국이나 먹고 가자~ 해장국집에서 뉴스를 보며 일기예보를 기다렸는데 일기예보 없이 뉴스가 끝나버린다. 음식점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앞으로 사나흘은 비가 온댄다. 아~ 여기를 빨리 벗어나도 결국 비를 피할 수는 없겠구나. 
황태해장국으로 배를 채우니 훨씬 든든하다. 어쨌든 비바람 오기 전에 진부령을 넘자. 약간의 오르막들이 시작 됐다. 큰 오르막들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정표에 진부령이 5km남았다고 표시된다. 읔 저 5km가 무지 가파른 오르막인가보다... 아무리 가도 큰 오르막이란 없었다. 용대리에서 출발한지 20분도 안되어서 진부령 정상에 올랐다. 진부령은 껌의 껌도 아니었다.



이런 고개 같지도 않은 고개가 왜 그리 유명해졌을까? 처음 정상에 올랐을 때는 령이라는 이름이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간성 쪽으로 내려가면서 끝없이 굽이쳐 내리는 길이 올라오는 길이었다면 정말 끔찍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역시 령은 령이다. 내리막길에서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시속 40~50km로 내리 꽂았다. 우리는 금방 거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텐트를 정리하다 안경 나사가 빠져 버렸다. 다행히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에 쓰던 안경을 하나 더 챙겨 왔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다간 귀찮아질뻔했다. 그래서 시내를 만나면 안경부터 수리하기로 했다. 안경점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인기척을 듣고 안쪽에서 휠체어를 밀고 아저씨가 나왔다. 그분은 두 다리가 없었다. 
“안경 나사가 빠졌는데...”
안경을 보더니 같은 나사는 없을 것 같다더니 나사 통을 뒤지고 뒤져 비슷한 걸 끼워줬다.
“감사합니다. 저기 돈은 얼마나...”
돈은 무슨 돈이냐며 어디 다른 안경점 가서도 나사하나 넣으며 돈 줄 생각하는 게 아니라며 나를 꾸짖는다. 
여행하는 동안 진원이형은 나의 무턱대기식 들이대기와 그 철판이 부럽다고 했다. 또 작은걸 하나 사도 꼭 서비스로 뭔가 하나를 얻어오곤 했는데... 그 안경점에서는 왜 그랬을까? 안경점 사장님이 장애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돈을 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난 아직도 멀었구나. 딴에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나라의 장애우에 대한 잘못된 정책과 시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놓고는 정작 나도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뿌리깊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전국일주중이며 지금 통일 전망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우리들에게 힘내라며 가게 밖까지 나와 배웅해주시는 아저씨를 뒤로 하고 맘속이 심란해진다. 꼭 완주하리라... 문득 이런생각이 든다. 
두손으로 두바퀴를 굴리는 아저씨와 두발로 두바퀴를 굴리는 우리는 뭔가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통일 전망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진원이형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단다. 이거 큰일이다. 혹시 신분증이 없어 진원이형이 못들어 간다면 나 혼자라도 다녀와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개성까지 출퇴근하는 사람이 있고, 매일 수백명이 금강산으로 여행하는 이런 세상에 북한땅도 아니고 남한땅을 가는데도 이렇게 까다롭다니... 일단 출입신고소에 가서 어찌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슬거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페달속도를 더 빨리했다.



아무리 군사지역이라지만 통일전망대 출입절차는 군대에 있는 누구 면회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출입신고소(통일안보공원)에서 신고서를 작성하고, 8분짜리 안보 슬라이드를 봐야하고... 같은 나라 땅에 들어가는 게 외국 나가는 것보다 절차가 귀찮다. 슬라이드 관람이라니... 쩝. 



출입신고소에 도착했다. 자전거로는 통일전망대에 들어갈 수 없단다. 오직 버스나 승용차로만 들어 갈수 있다. 그러고는 매표소 아가씨가 따로 신고서 작성하지 말고 승용차 타고 오신분들에게 부탁해서 들어가란다. 그분들 출입신고서 뒷면에 이름하고 나이만 적으면 된단다. 결국 신분증이 없어도 된다. 아마도 이곳 통일 전망대를 다녀간 많은 라이더들 덕에 헬멧에 요란한 사이클복을 입은 우릴 보고 바로 자전거 여행자인줄 알고 편법이겠지만 쉽게 통일전망대로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친절한 매표원 아가씨는 저 앞에서 신고서 작성하시는 부부가 차타고 왔으니 저분들한테 부탁하란다. 



하나 있는 아들 군대 보낸 지 한달, 어딘지 모를 허전한 마음에 여행 중이라는 그 젊은 부부는 아들 같은 우리들의 부탁을 쉽게 들어준다. 그렇게 우린 신분증도 없이, 안보슬라이드 관람도 하지 않고 통일 전망대로 갈수 있었다. 출입신고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진 또 10km쯤을 더 달려야 했다. 자전거를 출입신고소 앞에 메어 두고 가면서 기분이 내내 언짢다. 언제쯤에나 남한 땅만이라도 자유롭게 자전거로 누빌 수 있는 날이 올까... 



통일전망대는 중학굔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온 적이 있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더 지나 다시 와보는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 변한 게 없었다. 아직도 벽면에는 커다랗게 유치찬란한 6.25전쟁시의 그림(전쟁당시 백병전 상황에서 국군이 북한군을 잔인하게 쳐죽이는 그림)이 그대로 걸려 있다. 통일 전망대 어디에도 통일은 없다. 국정홍보자료처럼 각 정부의 통일 정책이 큰 판넬로 걸려 있고, 낙후한 북한주민들의 생필품들이 전시 되어 있고, 500원에 1분도 가지 않는 쌍안경들만 즐비하다. 통일전망대주변에는 큰 불상과 성모마리아상이 있는데... 통일은 기원으로 되는 게 아닐 텐데.... 통일은 북한 땅을 보는 것으로 불심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되는 것도 아닐 텐데... 통일은 벌써 현실이 되어 가는데... 
통일 전망대 아래로 이북으로 가는 도로가 뚫렸고, 철도도 연결이 되었다. 벌써 그 도로로 관광객이 오가고, 역사가 완공되면 내년부턴 기차가 드나들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통일 전망대에서 보는 통일의 전망은 어둡다. 아직도 반공의 잔재와 관광객들 후려치는 상술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7번 국도는 아름답다. 아름다운 해변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 뚫린 7번 국도보다는 구 해안도로로 자전거를 달렸다. 아름다운 해안이 우리 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정말 좋을 뻔 했다. 그 해안을 따라 계속 우리를 가로 막는 철책만 없었다면... 철책은 그들의 침투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아름다운 해변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 



비를 많이 맞았다. 도로에 고인 흙탕물은 얼굴까지도 차고 오른다. 꼴이 말이 아니다. 다행히도 오늘은 텐트가 아닌 성훈이집에서 자기로 했다. 아침 일찍 용대리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8시에 출발했다. 20분 만에 진부령에 올랐고, 11시 30분쯤 통일 전망대에 도착했다. 성훈이집은 속초를 조금 못가 있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일찍 가서 옷도 빨고 자전거도 정비하고 싶지만 너무 일찍 가는 것도 좀 그렇다.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여유를 즐겼다. 그러다가 시간을 때울 겸 공현진으로 들어갔다. 슈퍼에서 쭈쭈바를 하나씩 사들고 바닷가로 나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동해 바다를 실컷 보며 쉴 수 있었다. 부두한쪽에서 트럭에서 학꽁치 상자를 막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것을 몇 상자 도와주고는 또 이것저것 물었다. “어자원 씨 말리는 썬밸리 물러가라”는 어민들의 프랭카드에 대해서도 듣고, 멸치를 잡으러 나갔는데 멸치는 못 잡고 학꽁치만 잡아왔다는 선장의 이야기도 듣고... 그동안 여행중에 누리지 못한 여유를 한껏 누렸다.



성훈이 아버님은 토성면 성촌리 이장이시다. 그래서 성촌리 초입에서 이장님댁을 물으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성훈이한테 내가 들린다는 연락을 미리 받아던 어머니는 집 근처에 자전거가 다다르는 것을 보시곤 먼저 나와 반겨 주셨다. 그동안 밀린 빨래도 하고, 진흙으로 범벅된 자전거도 닦고... 
마을이장들 체육대회에 나가셨다가 우리 때문에 일찍 돌아오신 아버님은 두툼한 목살을 서너근 사오셔서 뒷마당 원두막에서 구워주셨다. 아버님과 함께 소주를 마시다보니 자꾸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성훈이 놈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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